대가족을 두신 89세 어머님을 정성으로 모신 3일간의 여정
더추모 장례지도사 김수호 /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 발인일자 25. 6. 2
25년 5월 마지막 날, 한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어머님을 떠나보내게 되셨다는 소식이었죠. 여섯 분의 형제자매가 계신 대가족이었는데, 요양병원에서 평온하게 임종하신 89세 어머님 곁을 지키며 앞으로의 장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하셨습니다.
미리 상조 서비스에 가입해두지 않으셔서 더욱 경황이 없으신 상황이었죠. 상담하다보니 둘째 아드님이 지인의 후배이기도 하여 좀 더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가족분들과 전화로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발산역 근처 이대서울병원장례식장으로 어머님을 모시는 것을 고려하고 계셨고, 빈소 예약과 대학병원 장례식장 비용 조언과 함께 장례 절차와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습니다.
가족분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며 앞으로 함께 할 3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상세히 안내해 드렸을 때,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어머님의 마지막 길을 맡겨주시기로 결정해주셨을 때, 감사한 마음과 함께 큰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300명 이상 조문객이 예상되어 그에 맞는 더추모 상품을 추천드렸습니다. (상주이신 큰 아드님이 대형은행을 퇴직하신 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 지 조문객이 예상보다 많이 왔습니다)
25년 5월 31일 오후, 이대서울병원장례식장에서 가족분들을 만나 어머님을 정중히 모시고 빈소 마련을 도와드렸습니다. 유가족분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조문객을 맞이하시는 소중한 공간인 만큼, 정성껏 준비를 도왔죠.
저는 장례가 진행되는 3일 내내 가족분들 곁을 지키며 모든 일정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특히 90세 어머님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모시고 싶다는 가족분들의 마음에 맞춰, 예절과 절차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안내해 드렸습니다.
이튿날 오후,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만나는 염습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료 지도사님과 함께 어머님의 평안한 얼굴을 보며 생전 고우셨던 모습 그대로 정성껏 단장해 드렸습니다. 관에 어머님을 모실 때, 손주들까지 함께 참여하여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어려워할까 염려했지만,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슬픔 속에서도 잔잔하고 평온하게 어머님과의 작별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치 편안히 잠든 듯한 어머님을 보며 감사함을 느끼시는 가족분들의 모습에 저 또한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마지막 날 이른 아침, 발인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이대서울병원장례식장을 떠나 어머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실 화장 시설인 서울시립승화원(벽제)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통일로 504에 위치한 곳으로 총 23기의 화장로를 갖춘 규모 있는 서울시민을 위한 시설입니다. 유가족분들이 편안하게 이동하실 수 있도록 리무진과 버스를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의 화장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화장 비용은 고인의 거주지에 따라 다른데, 서울, 고양, 파주시 같은 관내 시민의 경우 일반 성인 기준 12만원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관외 지역 주민에게는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며,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는 감면 혜택도 제공됩니다.
화장을 마친 후에는 서울시립승화원 내에 있는 능선형 잔디장으로 어머님을 모셨습니다. 현재 이곳의 자연장은 잔디장만 이용 가능하며, 수목장은 이미 만장 상태라고 합니다. 잔디장은 40년 안장에 5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며 지정된 위치에만 안장 가능하고 40년 후에는 다른 고인이 안장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다시 한번 안내해 드렸습니다. 푸른 잔디 아래 영원한 안식을 찾으신 어머님을 모셔 드린 후, 모든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와 함께 깊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3일 내내 경황이 없으셨던 가족분들께 든든한 존재가 되어 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힘든 시기에도 모든 절차를 매끄럽게 진행하고 가족분들의 작은 바람 하나까지도 귀 기울여 반영해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저의 도움으로 가족분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어머님과의 마지막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실 수 있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둘째 아드님이 디자인회사를 하신 분이었는데 감사하다며 개인 명함을 특별 제작해주신다는 약속과 함께 나중에 집안 또다른 어르신분들 장례도 맡기시겠다고 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렸습니다.